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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평] <주적은 불평등이다>

[프레시안 books] 
이정전 교수의 진단 "한국의 진짜 주적은 불평등이다"

source: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0210

통계청이 지난 달 25일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수지 자료를 보면, 가구(2인 이상) 소득 1분위(하위 1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95만8600원이다. 올해 2인 가구 최저생계비 168만8700원에 한참 못 미친다. 소득 2분위(하위 20%)의 월평균 소득도 183만7500원에 불과하다. 소득 하위 20%는 사실상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셈이다. 

반면 10분위(최상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149만2400원이다. 소득 1분위 가구의 12배에 달한다. 

한국 사회 모든 갈등의 기저에 불평등이 똬리 틀었다는 말은 과연 과장일까. 201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살인율은 29위로 비교적 낮지만, 여성에게는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살인율 성별격차 순위는 OECD 회원국 중 37위였다(순위가 낮을수록 살인피해자 성별격차가 큼). 

청년 자살율과 노인 자살율 등은 수년째 압도적 1위다. 2015년 기준 한국의 '더 나은 삶 지수'는 OECD 조사 결과 전체 36개국 중 29위였다. 

소득 불평등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키운다는 증거는 여러 차례 제기됐다. 지난 2012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경제성장과 사회지표의 변화' 보고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함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고, 이는 살인과 자살 통계 급증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5월 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황선재 중앙대 사회학과 연구교수의 연구자료를 발표한 '불평등과 사회적 위험' 보고서를 보면 소득불평등이 클수록 자살률과 이혼율, 우울증 관련 통계가 증가했고 합계출산율과 결혼율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공공선택학회장, 대통령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분과위원장 등을 지낸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 책 <주적은 불평등이다>(개마고원 펴냄)에서 한국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제1 과제가 불평등 해소임을 강조한다. 우리의 가장 위험한 적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닌, 다른 어느 체제도 아닌 불평등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새삼 '주적'이라는 강렬한 단어를 제목에 명기한 까닭은, 당연하겠지만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보다 우리 내부의 불평등이 더 무서운 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리라. 

돌이켜 보면, 한국이 언제고 지금과 같은 '헬조선'이었던 건 아니다. 외환위기 체제(IMF 체제)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전, 평생 고용이 이야기되고 이웃사촌이 이야기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공익광고의 상징은 '정'이었다.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새 노선에 들어선 후, 벌어진 소득격차가 공동체 해체와 계층 갈등을 낳았다. 

책은 따라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안착된 후 우리에게 유사 신화가 된 믿음을 깨부수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극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유사 신화란 곧 신자유주의 논리다. 한국의 불평등 정도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괜찮다,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부자가 되느냐 마느냐는 개인에게 달렸다, 경제성장을 위해 불평등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를 깨야함을 저자는 강조하고, 나아가 이들 신화를 세세한 사례와 이론을 들어 반박한다. 

▲ <주적은 불평등이다>(이정전 지음, 개마고원 펴냄) ⓒ프레시안

진단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은 결국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주역은 정치임을 강조한다. 우리의 정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을 결정했듯, 이 경로를 취소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결정하는 주체 역시 정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부가 어떤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경제구조는 달라진다"며 "정치가 올바른 정책을 마련하고 힘 있게 추진한다면 불평등 경제도 평등한 경제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문제는 국민의 주권의식과 정치권의 실천의지다. 국민의 주권의식은 지난 촛불집회를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됐다. 우리 사회가 원치 않은 건 단순히 박근혜-최순실로 이어지는 범죄 집단이 아니었다. 많은 학자들이 지난 촛불집회에서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바꿔야한다는 의미를 읽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의 압도적 지지도 헬조선을 바꿔달라는 열망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정치권의 실천의지다.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바뀔지, 아닐지가 결정될 것이다. 저자가 굳이 책에 '금수저-흙수저의 정치경제학'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까닭은, 불평등으로 대변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결국 정치임을, 나아가 경제학의 출발이 본래 정치경제학이었음을 새삼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